고등학교 때였다.
음악에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던 때였고 녀석은 갑자기 나타나 노래를 불렀다.
녀석의 노래에 반해 그 이후로 함께 밴드를 하게 되었고 이곳저곳으로 공연을 다니며 꽤나 많은 추억을 쌓았다.
성남 예술센터, 홍대 곳곳의 라이브클럽, 경남 창원 등등
취향도 꽤나 비슷해 상당히 숙맥인 나임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다.
수능을 마치고 친구들 중 처음으로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커피에 하나둘씩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낮에는 카페를, 밤에는 공연을.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결국 밴드는 해체되었고 나는 조금 먼 길을,
그리고 녀석은 잠적하는가 싶더니 포터 필터를 들고 지금 내 앞에 서있다.
전부터 알고 있던 카페에 헤드 바리스타로 있다는 녀석.
번잡한 홍대 거리를 빠져나와 경의선 숲길 골목 사이로 들어오니, 창 밖에서도 보일 정도로 손님이 길게 늘어서있다.
댄디하게 차려입은 채 손님을 맞이한다.
카페는 상당히 붐벼 꽤 소란스러웠지만 귀를 녹이는 트럼펫 소리와 향긋한 커피내음이 마음을 안정시켰다.
음악 취향, 여전하구나. 좋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추천해주는 커피를 주문하니, 오랜만인데 무슨 돈이냐며 앉아있으라는 녀석.
나는 또 미안함과 고마움에 어쩔 줄 몰라하다가 자리에 앉아 카메라를 들었다.
만드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다 음료를 가져다주었고, 풍부한 향에 눈이 저절로 커지며 감탄을 내뱉었다.
씩 웃는 녀석의 모습이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고 다른 손님을 받으러 가는 뒷모습에서 예전 모습이 겹쳐 보였다.
무대에 오르기 전, 목을 풀고, 손을 풀고, 녀석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나는 드럼스틱을 든 채 무대에 오르면
난 항상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설명할 수 없는 떨림.
심장 깊숙이 울리는 진동과 귀를 꽉 채우는 소리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렇게 곡을 마치면, 녀석은 뒤를 돌아보고 아까처럼, 나를 향해 웃었다.
너, 지금 정말로 행복하구나.
다시 그때의 기분을 공유하는 건 이제는 쉽지 않겠지.
그러나 이젠 서로 다른 길을, 그때와 다른 상황으로 나아가지만 우리는 여전하다.
여전히 숙맥에 감정표현은 서툴고, 정말 좋아하는 걸 이야기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눈이 빛나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참 여전하다.
무대에서 너는 가장 앞에, 나는 가장 뒤에 존재한다.
너는 너의 목소리로 관중을 휘어잡고 나는 가장 뒤에서 음악을 받치고 기둥을 잡는다.
서로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고 수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교감한다.
그렇게 누군가를 감정적으로 달하게 한다.
또 자신의 감정을 뿜어낸다.
지금의 넌 너의 감정을 손 끝에 담고 있다.
셔터를 누르는 나의 손 끝엔 어떤 감정이 실려있을까.
P.S : 나중에 꼭 애들이랑 여행이나 가자. 그땐 셔터에 나를 더 담아내서 끝내주는 영상 하나 만들께.
미친 듯이 놀기만 하자.
그리고 오글거리니까 이 글 보고 이 얘긴 하지 마 술이나 퍼먹자.
잘 지내고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