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

이명박 정부부터 시행되어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확장,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서명자 594명, 세월호 시국선언 한 문학인 754명,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을 한 문화인 6,517명 그리고 박원순 후보 지지선언을 한 문화인 1,608명, 총 9,473명

좌파 성향이거나 정권에 협조적이지 않는 대부분의 예술인을 리스트에 작성했다.

이는 평등의 원칙과 문화기본법 등에 반하는 위헌이자 위법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문화 권력 균형화 전략'이라는 문건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문화계 좌파인사 척결, 예산지원을 끊음으로 인해 우파로 전향시킬 것' 블랙리스트와 유사하다.


블랙리스트 사태가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6년 10월 12일 한국일보에서 익명의 제보를 받아 최초로 보도되었는데, 보도 내용에 따르면 익명의 제보자는 “지난해(2015년) 5월 흔히 말하는 ‘블랙리스트’가 청와대에서 내려왔고, '우리 입장에서는 이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문체부 공무원들의 푸념을 들었다”면서 “실제 이문건을 직접 보기도 했거니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사진으로 찍어두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때는 저 말이 진짜일까 싶었는데, 이후 예술계에서 이런저런 잡음이 들리면서 정부가 이 블랙리스트를 충실하게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도 처음엔 전면 부정했으나 17년 이실직고하였다. 14년 여름부터 15년 1월 사이 조윤선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었고 정관주 당시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과 함께 직접 지시를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존재했고 청와대, 국정원, 문체부뿐 아니라 경찰청 정보국까지 관여한 사실로 드러났다.

2014년 박근혜 정부부터 블랙리스트를 가동해 문화예술인과 문화예술단체를 지원 배제하였고 이 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 콜트콜택 노동자 등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한 예술인 또한 배제시켰다.


    



블랙리스트는 최순실에게도 보고하여 최순실이 조치를 내렸고 박정부는 어버이연합 측에 5억 원 이상의 돈을 주며 관제데모를 나서도록 지시했다. 이는 청와대가 직접 여론 조작에 나선 것이고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와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2018년 1월 조윤선 전 장관은 1심에서 집행유예, 2심에선 유죄를 선고받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고 박 전 대통령 또한 공범 책임을 물었다.




그 사이 문제인 정부로 바뀐 후 도종환 시인이 문체부 장관으로 자리했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 문화비전 2030 보도자료에 아래와 같이 발표했다.


'도종환 장관은 ‘문화비전 2030’ 발표에 앞서 “인간은 누구나 감시받지 않을 권리, 검열당하지 않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하며 “국가가 지원에서 배제한 것은 물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침해함으로써 수많은 문화예술인들과 국민들 마음에 깊은 상처와 아픔을 남겼다. 정부를 대표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는 “국가폭력인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위원회에서 권고한 제도 개선안을 이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또한 “우리가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 문화’는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에서만 실현될 수 있기에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나갈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새로운 문화비전과 예술정책에 담았다.”라고 문화비전과 새 예술정책의 수립 취지를 밝혔다.'



'예술활동을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을 기초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팔 길이 원칙은 문화예술에 관한 기본 원칙이다.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예산은 세금에서 나온다. 도종환 장관의 말은 이 세금을 아무에게나 퍼주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공동체적 성질을 지니고 있다. 단순한 경제적 부문으로만 보자면 예술사업이 안정된 보장사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예술이 지닌 에너지를 믿고 그들의 활동을 국가에서 나서 도와주는 것이다.


2015년 4월 29일 미국 볼티모어에서 경찰에 흑인 과잉대응을 비판하던 시위가 폭동으로 번져 건물 200여 채가 불탔다. 그러던 중 폭동의 한가운데 트럭 위에서 한 흑인이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을 췄고 이를 찍은 동영상이 번지자 시위가 상당수 잠잠해졌다. 'Beat it'의 메시지는 "누가 그른지 옳은지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물러나요"이다.


1992년 5월 27일에는 세르비아인들의 폭격으로 빵을 사려고 줄 선 사라예보 시민 22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전쟁 전까지 사라예보 필하모닉에서 연주를 했던 베드란 스마일로비치(Vedran Smailovic)는 22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는 다음날 오후 4시 그곳에 나타나 첼로를 꺼내 연주를 했다. 연주는 희생자 22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22일 동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계속되었다. 요란하던 총성이 잦아들고 두려움에 떨며 숨어 지내던 사람들은 용기를 내어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점령군들은 첼리스트를 제거하기 위해 저격수를 배치하였고 저항군들도 이 첼리스트를 보호하기 위하여 저격수를 배치하였다. 그는 22일 동안 토마소 알비노니의 ‘아다지오(Adagio)’를 끝까지 연주했다.

영국의 작곡가 데이비드 와일드 (David Wilde)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는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무반주 첼로 곡을 작곡해 전쟁과 파괴 죽음과 비극, 그리고 그 가운데서 솟아나는 희망을 담았다.

1994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국제 첼로 페스티벌에서 첼리스트 요요마가 그 곡을 연주했다, 연주 현장에 있었던 폴 설리번은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조용히, 그리고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음악은 시작됐고 그 음악은 연주장에 스며들었다.
음악은 죽음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불길한 메아리로 가득 찬 어둡고 텅 빈 우주를 만들어냈다.
음악은 서서히 그러나 끊임없이 고뇌하고 고함치며 격렬한 열정으로 우리 모두를 사로잡았고,
마침내 죽음의 직전에 공허한 마지막 한숨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던 그 순간처럼
고요함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예술이 가진 힘은 단순한 경제적 문제로만 바라볼 수 없다. 예술이 가진 힘, 그것을 알기에 모든 국가는 예술을 지원하는 것이다.

블랙리스트 사태는 이를 악용하고 권력자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예산을 인질로 잡아 지원 없이는 활동 유지가 힘든 예술인들을 억압하고 침해하고 정치적 강요를 한 것이다. 국가가 휘두른 권력남용이다.

예술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고 자유롭게 표출할 권리가 있다. 개인이나 단체에게, 누군가에게 휘둘려서는 결코 진정한 예술이 나올 수 없다.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9,473명은 예술적 자유를 살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이 상처는 앞으로 보일 국가의 지원으로 회복될 수는 있어도 지워질 수는 없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한국예술위원회로 명칭을 바꾸고 위원장 선출이 호선제로 바뀌었다. 


문화예술진흥법 제24조(위원장 등)
① 위원회에 위원장 1명을 둔다.
② 위원장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29조 제1항에 따른 임원추천위원회(이하 "임원추천위원회"라 한다)가 복수로 추천한 사람 중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위촉한다.  


제20조(한국문화예술위원회)
①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를 둔다.
② 위원회는 법인으로 하되, 이 법에 규정한 것 외에는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제29조(위원의 직무상 독립 등)
① 위원회의 위원은 임기 중 직무상 외부의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
② 위원회의 위원은 문화예술의 다양성과 균형적 발전을 위하여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③ 위원회의 위원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외에는 그의 의사에 반하여 면직되지 아니한다.



진흥법 제24조 제2항의 법률을 적용받지 않도록 공공기관에서 제외했다. 한국예술위원회는 제20조 제2항에서 독립적 법인을 명시하고 있고 제29조에서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24조 제2항을 빠져나가면서 완전한 독립체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화예술 시장은 세계적으로 규모가 커지고 주목받고 있다. 남북교류, 평창올림픽에서도 문화예술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을 지녔다. 전 포스팅을 보면 알 수 있듯 대중 또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은 어떻게 변화할까. 블랙리스트 이후 정권이 교체되며 문화예술의 중요도는 더욱 높아지며 세계적으로 자리할 것이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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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_il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개인적인 감정을 적어내려가기도, 좋은 것을 본 후 감상문을 쓰기도, 문화예술에 관한 생각을 적기도 합니다.